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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언론 보도를 통해 정부 청사나 국회의사당 앞에 쌀이나 양파 등 농산물을 쌓아 두고 시위를 벌이는 농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정부나 국회에 농산물의 가격 폭락에 대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모습입니다. 농민들이 땀 흘려 키운 배추나 무를 시장에 내다 팔지 않고 밭에서 갈아엎는 모습 또한 낯설지 않습니다. 애써 생산한 농산물을 싼값에라도 팔면 생산비의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을 텐데 왜 갈아엎는지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농산물을 수확하고 판매하는 데 드는 인건비·포장비·운송비 등을 따지면 차라리 갈아엎는 것이 손해를 줄이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농산물 가격 파동의 이유

 

농산물 가격 파동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

일반적으로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는 것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급이 늘어나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량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는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농산물은 풍년이 들어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흉년이 들어 농산물의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이 폭등하곤 합니다. 이는 가격의 변화에 수요량이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농산물의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경제학에서는 가격이 변할 때 수요량이 변화하는 정도를 탄력성으로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가격의 변화에 그 상품의 수요량이 크게 변화하면 탄력적이라고 하고, 크게 변화하지 않으면 비탄력적이라고 합니다. 이를 수요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농산물은 가격의 변화에 비해 수요량의 변화가 크지 않은 비탄력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쌀값이 떨어졌다고 해서 밥을 더 많이 먹거나 쌀값이 올랐다고 해서 밥을 더 적게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농산물은 사람들의 평소 소비량을 넘어설 정도로 공급이 많아지면 가격이 쉽게 폭락합니다. 농산물의 생산량이 20% 증가했다고 가정하면, 가격은 20%만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50% 이상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생산량이 20% 감소하면, 가격은 20%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50% 이상 폭등할 수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까요?

농산물 중에서도 금세 상하기 쉬운 채소의 경우, 풍년이 들어 생산량이 많아지면 농민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팔아야 하기 때문에 가격이 급락합니다. 반대로 흉년이 들어 생산량이 줄어들면, 다시 농산물을 재배해 수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생산량을 바로 늘리지 못하며, 이로 인해 가격이 급등합니다. 예를 들어, 김장을 담글 때 필요한 가을배추는 공급을 늘리려면 다음 해 가을까지 최소한 1년을 기다려야 합니다. 김장용 배추뿐 아니라 대부분의 농산물은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이 되어야 파종할 수 있기 때문에 생산량을 늘리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를 공급의 가격 탄력성이라고 하는데, 농산물은 가격의 변화에 비해 공급량의 변화가 크지 않은 비탄력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처럼 농산물은 수요와 공급 모두에 대해 가격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가격 파동이 자주 일어나는 것입니다.

 

농산물 가격 파동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농가의 인구는 221만 5천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50여 년 전 국민의 약 50%가 농업에 종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입니다. 그러나 농업은 여전히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어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특히 농산물의 가격 파동은 소비자와 농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이슈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이에 정부나 지방 자치 단체들은 농민의 소득 보전과 소비자 보호를 목적으로 농산물의 가격 안정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정부나 지자체는 농산물의 생산량을 조절하기 위해 품목별로 재배 면적을 파악한 다음, 적정 면적에서 농산물이 경작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구속력이 없어 정부가 권고한 수준으로 재배 면적이 유지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또한 농가 소득의 안정을 위해 농산물의 유통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업협동조합과 사전 계약을 체결하고, 체결한 양만큼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농민들은 풍년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락한다고 해도 사전에 계약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팔 수 있게 됩니다. 흉년인 경우에는 가격이 폭등해도 사전에 계약한 가격으로 농산물을 팔아야 하므로 농가 입장에서는 불리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격의 급등락과 상관없이 안정적인 가격으로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은 농가로서는 큰 장점입니다. 사전 계약을 통한 농산물 재배가 많이 이루어지고는 있으나 전체 농가의 소득을 안정시키거나 증가시킬 수 있는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고 농민이 소비자에게 농산물을 직접 판매하는 직거래 시장의 활성화도 농가 소득을 높이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 되고 있습니다. 중간 도매상을 거치지 않는 직거래를 통해 농가는 이전보다 높은 가격에 농산물을 팔 수 있고, 소비자는 이전보다 낮은 가격에 농산물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흉년이 들어 해당 농산물의 가격이 폭등하면, 정부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해당 농산물에 대한 긴급 수입을 통해 시장에 공급을 늘려 가격 안정을 시도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정부는 1998년에 마늘 가격이 50% 이상 급등하자 마늘 2천 톤을 긴급 수입해 마늘 가격을 안정시켰습니다. 긴급 수입을 통해 해당 농산물의 가격이 안정되면 소비자의 부담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지만,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흉년에 따른 농산물의 가격 상승의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해 소득이 감소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정부의 다양한 농업 보조 정책이 있습니다.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의 수입 감소를 완화하기 위해 경지 면적에 비례해 농가에 직접 지원금을 제공하는 ‘쌀 직불금 제도’와 같은 정책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한편 농업은 식량 안보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2019년 우리나라의 전체 식량 자급률은 45.8%이며, 쌀과 보리 등 곡물류의 자급률은 19.3%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의 농산물 수출이 한때 중단되면서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급등으로 세계 여러 나라가 식량난에 직면했습니다. 자국의 식량을 다른 국가에 의존하게 되면 예기치 않은 위기에 봉착할 때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자국의 식량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농업에 대한 지원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농산물 가격 파동이 주는 교훈

농산물 가격 파동은 농산물만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올해 농산물 가격이 높다고 해서 내년에도 높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는 농산물 시장뿐 아니라 주식 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도 해당합니다. 주식 시장이 활황을 보이면 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더 많은 사람이 주식 시장으로 향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처럼 급격한 주가 하락이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아파트 가격이 끝을 모를 정도로 상승세를 이어갔습니다.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은 전반적으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자, 주택 담보 대출을 통해 주택을 구입한 사람들이 원리금 상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주식 투자를 할 때는 먼저 경기와 해당 시장의 흐름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즉, 투자하거나 거래하고자 하는 상품만이 가진 특성을 파악하고, 과거에 어떤 가격 흐름을 보여 왔는지 면밀히 분석한 후에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선택이 필요한 순간은 우리 삶의 곳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