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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가는 1960년대 이레 대체로 올랐다. 2008년 하반기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사상 최고점에서 폭락했고, 이후 반등했다가 2014년과 2020년 다시 급락했다. 우리나라처럼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처지에서 얼핏 생각하면 유가는 내려가는 게 좋은 일일 것 같다. 그럼 산유국에는 유가상승이 좋은 일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원유를 수출하는 산유국은 유가가 오르면 돈을 더 번다. 그렇다고 마냥 좋지는 않다. 산유국은 원유 판매수익으로 웬만한 공산품은 죄다 수입해 쓰기 때문이다. 산유국이 수입하는 공산품은 원유 수입국이 수입 원유를 원재료로 만드는데, 유가가 뛰면 원유 수입비와 공산품 제조비가 더 든다. 기존 이익 수준을 유지하려면 공산품 수출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럼 산유국이 수입하는 공산품 가격이 오르면서 산유국에서 외국으로 돈이 빠져나간다. 이런 이치를 생각하면, 원유만 갖고 살 수 있다면 모를까, 산유국이라도 제멋대로 유가를 올릴 수는 없는 셈이다.
유가가 떨어져도 사정은 비슷하다. 산유국은 대개 제정수입을 원유 판매에 의존한다. 만약 국제 유가가 단기 폭락하면 원유 판매 수입이 급감하므로 재정 사정이 나빠지기 쉽다. 공산품 수입도 줄여야 한다. 유가 하락은 산유국이 공산품 수입을 줄이면 우리나라 같은 원유 수입국도 영향을 받는다. 어떤 영향을 받느냐는 유가 하락 속도나 기간에 따라 다르다.
유가 하락이 장기간 완만하게 진행되면 수입 비용이 절감되므로 경제에 득이 된다. 유가가 내리면 수입 물가가 내리고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도 따라 내리므로 가계 소비 심리가 개선되고 기업 수익성이 좋아진다. 소비, 생산, 투자가 확대되고 경기가 확장될 수 있다. 하지만 유가가 단기 폭락하면 경제에 좋은 영향보다 악영향이 더 클 수 있다. 실례로 2014년 중반 이후 세계 경제는 갑작스러운 유가 폭락으로 산유국과 수입국 모두 큰 타격을 받았다.
2014년 7월 원유가는 WTI 기준으로 배럴당 100배럴 안팎이었는데, 8월이 들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유가는 2016년 2월 12일에 12년 전 수준인 26.21달러에 이를 때까지 추락했다.
유가가 폭락하자 산유국은 원유 판매 수입이 급감했다. 원유 수출을 재정의 주요 수입원으로 삼는 나라 중 러시아, 브라질, 베네수엘라, 이란은 심각한 불황에 빠졌다. 특히 베네수엘라 경제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 위기 전 베네수엘라는 재정과 국민 복지를 거의 오로지 원유 판매에 수입에 의지했다. 원유 말고는 변변한 산업이 없어서 식량, 생필품, 의약품 수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했다. 그런데 갑자기 원유 판매 수입이 끊기자 상품 수입을 못해 물자가 부족해졌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먹을거리마저 구하기 어렵게 됐다.
우리나라처럼 원유를 수입하면서 산유국과 신흥국에 공산품을 많이 수출하는 경제도 어려워졌다. 산유국이 수요를 줄이면서 공산품 수출과 건설, 플랜트 수주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2015년 10~12월 단 석 달 동안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산 자동차 수입에 쓴 돈이 한 해 전 보다 30%나 줄었을 정도다.
2014년 7월 배럴당 100달러 안팎이던 국제 유가가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고, 2016년 2월 20달러 대까지 추락했다.
당시 유가는 왜 폭락했을까? 수요와 공급에는 다 이유가 있다. 수요 면에서는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뒤 침체한 세계경제가 활력을 회복하지 못한 것이 요인이다. 글로벌 원유 수요는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고 나서 원유 소비를 10년간 갑절로 늘린 덕에 꾸준히 늘었다. 그 결과 국제 유가는 2008년 1월 사상 최초로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다. 2008년 하반기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사상 최고점에서 급락하기는 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상승세를 탔고 2010년대 들어서는 100달러 안팎에서 움직였다. 하지만 금융위기 여파가 길었다.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충격을 소화하지 못한 남유럽 경제가 국가부채위기를 겪으며 부진에 빠졌고, 원유 수입 대국 중국마저 경기가 나빠졌다. 글로벌 수요가 부진하자 공산품 수출이 저조해졌고, 제조업체의원자재 수요가 급감하면서 유가를 끌어내렸다.